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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싫어하는 그 그러고 많아요. 선명했다. 최상의창원 극단 미소를 창단하고 도파니아트홀을 이끌며 연극계 존재감이 묵직했던 연극인 천영훈이 12일 밤 삶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향년 64세.
천 연극인은 1961년 3월에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재수학원을 다니던 중 학원 국어 선생님이 당시 마산 극단 세림기획 연극 무대에 서볼 것을 권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마음이 연극으로 계속 기울었고, 1980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1989년 6월 18일 극단 미소를 창단했다. 2011년 한국연극협회 11대 경남지회장을 맡는 등 경남 연극 발전에 힘써왔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웃음은 잃지 말고, 창원 연극의 야마토게임방법 발전을 위하여, 지금의 우리보다는 나중의 우리를 위한 밑거름이 되자. 성내지 아니한 그러한 얼굴로."
그가 극단 미소를 창단하며 한 이 말은 인생철학이자 연극 철학이다. 이제 그의 미소를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연극과 기록으로 기억할 일이 우리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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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경남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후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 하는 연극인 천영훈. /김구연 기자
늘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기에 연극인들은 그를 '천털'이라 불렀다. 별명 덕분인지 무대 밖 그의 인상은 더없이 부드럽고 친근했다. 암투병하던 그는 릴게임꽁머니 지난해 제43회 경남연극제에서 단체 대상과 연기 대상을 거머쥐며 식지 않은 열정을 발했다.
천 연극인은 2022년 식도암 3기를 판정받고 고비를 몇 번 넘겼다. 어느 정도 회복한 후 활동을 차근히 이어갔는데 지난해 설날쯤 폐암을 발견했다. 두 번째 암 선고를 받고도 그는 "아등바등할 기 뭐 있노", "없이 살아도 웃음을 잃지 말자"며 무대 바다이야기온라인 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43회 경남연극제에 극단 미소 연극 <대찬이발소>(장종도 작·연출) 속 대찬 역으로 열연하며 연기대상을 받았다. 경남도립극단의 <빌미>(최원석 작·연출)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경남을 대표해 43회 전국연극제 출품을 준비하던 때에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자주 오갔다. 연습 시간에도 몸이 힘들어 자신의 차례가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아닐 때는 사무실에서 쉬어야 했다. 자주 무대 곁을 지키지 못했기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해했다.
천 연극인은 연출보다 예술감독을 맡으며 젊은 연극인들이 극단을 꾸려가도록 했고, 도파니아트홀을 운영하는 데 힘을 썼다. 2012년부터 <겸사겸사 콘서트>를 열고 모금해 수술을 앞둔 중증 환자에게 기부도 했다. 이러한 베풂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으니 지난해 10월부터 그를 응원하는 모금 활동이 벌어졌다. 천 연극인은 그들의 도움 소식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페이스북에 기록했다.
천 연극인은 기록이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경남연극제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연습 사진이나 단체 사진 등을 촬영하던 일은 익숙한 모습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늘 일상을 담으면서 지인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아픈 뒤에는 투병 일기처럼 글을 적어서 주변에 소식을 알렸다. 매번 "평안한 날 되세요"라며 따뜻한 말로 마무리했다.
고 천영훈 도파니아트홀 대표
"병을 고치며 살기보다 그냥 홑이불 실밥 하나 조용히 튿고 살면 되는데 욕심이 많아서 아직도 일상이 흔들린다. (중략) 나는 그저 한 지하실에 반 늙은인데."
지난해 12월 20일 그가 페이스북에 적은 마지막 글이다.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2일 오후 11시 30분쯤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장종도 극단 미소 상임연출가는 "연극의 불모지인 창원에서 지금까지 버텼고, 나 또한 20년 넘게 연극을 할 수 있게 인도해줬다"면서 "좋은 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너무 빨리 간다, 더 있다 가지' 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욕심이 없었고, 극단을 이끌어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한 번이라도 더 웃자고 했던 든든한 어른이었다"고 덧붙였다.
유족으로 부인과 딸 둘이 있다. 빈소는 창원시립상복공원장례식장 3빈소에 차려졌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창원시립상복공원이다.
/주성희 기자
천 연극인은 1961년 3월에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재수학원을 다니던 중 학원 국어 선생님이 당시 마산 극단 세림기획 연극 무대에 서볼 것을 권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마음이 연극으로 계속 기울었고, 1980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1989년 6월 18일 극단 미소를 창단했다. 2011년 한국연극협회 11대 경남지회장을 맡는 등 경남 연극 발전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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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대표해 43회 전국연극제 출품을 준비하던 때에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자주 오갔다. 연습 시간에도 몸이 힘들어 자신의 차례가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아닐 때는 사무실에서 쉬어야 했다. 자주 무대 곁을 지키지 못했기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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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연극인은 기록이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경남연극제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연습 사진이나 단체 사진 등을 촬영하던 일은 익숙한 모습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늘 일상을 담으면서 지인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아픈 뒤에는 투병 일기처럼 글을 적어서 주변에 소식을 알렸다. 매번 "평안한 날 되세요"라며 따뜻한 말로 마무리했다.
고 천영훈 도파니아트홀 대표
"병을 고치며 살기보다 그냥 홑이불 실밥 하나 조용히 튿고 살면 되는데 욕심이 많아서 아직도 일상이 흔들린다. (중략) 나는 그저 한 지하실에 반 늙은인데."
지난해 12월 20일 그가 페이스북에 적은 마지막 글이다.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2일 오후 11시 30분쯤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장종도 극단 미소 상임연출가는 "연극의 불모지인 창원에서 지금까지 버텼고, 나 또한 20년 넘게 연극을 할 수 있게 인도해줬다"면서 "좋은 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너무 빨리 간다, 더 있다 가지' 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욕심이 없었고, 극단을 이끌어가는 힘든 상황에서도 한 번이라도 더 웃자고 했던 든든한 어른이었다"고 덧붙였다.
유족으로 부인과 딸 둘이 있다. 빈소는 창원시립상복공원장례식장 3빈소에 차려졌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창원시립상복공원이다.
/주성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