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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생전 큰아버지 모습. 고등고시 합격 후 공직에 출사한 그는 대한민국 문화 행정과 지적 재산권의 토대를 닦은 선구자의 길을 걸었다.
다시 비행기 안이다. 큰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 기내등이 꺼진 정적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여 그분의 생애를 정리해 보려 한다.
내가 꼬마였을 때 이미 사회적 성취의 정점에 계셨던 분이었기에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는 그 거대한 생애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여, 시대별 역사적 사실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분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어 보 릴짱릴게임 고자 한다.
나의 조부는 태평양전쟁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셨다. 해방 후 고향 마산으로 돌아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귀국선 끝엔 지독한 빈곤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중학교조차 마칠 수 없었다. 십 대 후반의 청춘을 학교 대신 막노동 현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바쳐야 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터졌고, 청년이었던 큰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아버지는 낙동강 방어선이 수세에 몰리던 절박한 시점에 참전하셨다.
조부 슬하에는 큰아버지 위로 두 아들이 더 있었으나 첫째는 유아기에 병사했고, 둘째는 전쟁 중 행방불명(최근 국방부 조사로 전사 확인)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분을 큰아버지로만 알고 자란 나는 한참 후에서야 그 아픈 가족사를 알게 되었다.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짊어지셨던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것이다.
나의 부친은 큰아버지와 열한 살 터울의 동생이다. 나이 차가 컸던 만큼 부친에게도 큰아버지는 형이라기보다 한 세대 윗길의 어른 같은 존재였다.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 이미 오십을 넘긴 백발의 신사였던 그분은 곰방대를 물고 우리 형제들을 손주 보듯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했었다. 조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큰아버지 슬하에 자녀가 없 릴게임추천 었기에 우리에게 큰아버지는 곧 할아버지와 다름없었다.
1953년 휴전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큰아버지는 갓 스물을 넘긴 나이였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 당신이 선택한 유일한 돌파구는 고등고시를 통한 입신양명이었다. 큰아버지보다 두 살 아래인 고모는 당시의 그를 “지독한 양반”이라 회상하곤 했다. 장작도 때지 못해 손이 곱아 버리는 손오공게임 사글세 냉방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혓바닥으로 책장을 넘기며 입김을 불어 가며 공부하던 그 집념은 가족들에게 경외심마저 안겨 주었다.
마침내 1956년, 큰아버지는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최종 합격하셨다. 첫 소임을 맡은 곳은 문교부였다. 당시 고등고시는 한 해 합격자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관문이 좁았기에 실로 집안의 자랑이자 ‘현대판 장원 급제’라 할 만했다. 정규 학력이 없어도 실력만으로 응시가 가능했던 당시의 제도는 그나마 당신께 천행이었다.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업에 대한 열망은 공직 생활 중에도 이어져 국학대(현 고려대에 통합)에서 법학과, 서울대에서 행정학을 수학하며 학문적 기틀을 다지셨다.
고등고시 합격 후 공직에 출사한 큰아버지의 삶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문화 행정과 지적 재산권의 토대를 닦은 전방위적 선구자’의 길이었다.
지금처럼 행정 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문교부는 교육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까지 통합 주관하던 부처였다. 덕분에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을 넘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문교부 차관직 퇴임 후에도 서울올림픽 자문 역할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셨다.
특히 큰아버지는 한국 저작권법의 선구자였다. 해방과 전쟁 후 대한민국의 급조된 시스템 전반에서 미비할 수밖에 없었던 저작권법을 연구하며 한국형 체계화를 추진하셨다. 이후 저작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개정된 법이 현실에 안착하도록 법학계와 사회를 독려하는 데 헌신하셨다.
조카 장재철
‘그립습니다 · 사랑합니다 · 자랑합니다 · 고맙습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전화 : 02-3701-5261▨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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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행정 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문교부는 교육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까지 통합 주관하던 부처였다. 덕분에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을 넘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문교부 차관직 퇴임 후에도 서울올림픽 자문 역할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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