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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통문화관에서 초의다례로 진행된 추모의례.
광주전통문화관의 무형유산 추모제 광주문화재단 산하 광주전통문화관에서는 해마다 작고한 무형유산 명인들을 기리는 합동추모제를 진행해왔다. 2012년 12위를 중심으로 2025년에는 21위 추모제를 거행하였으니 해마다 제위(祭位)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박희순 전통문화관장 주도로 진행한 의례에 나도 부분적으로 참여하였기에 개인적인 감회를 가지고 있다. 내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전통유교식 제례와 전수자 및 보유자 추모 공연, 헌다례와 제례무 및 제례악, 송순단 무녀 초청 씻김굿, 영산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재와 판소리 공연 및 광산 농악 초청 공연, 능주 씻김굿 초청 공연, 광주전통불교영산재보존회 초청 영산재 진행 등으로 나타난다.
해마다 컨셉을 달리하긴 했지만, 광주시 지정 무형유산 보유자들을 추모하는 의례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살피고 싶은 것은 2026년 1월 현재 21위에 봉헌된 보유자들의 출생과 활동 내력에 알라딘게임 관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1986년 11월 1일 광주광역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무형유산 보유자 소속이 모두 전라남도였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남도판소리가 197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였고, 판소리 강산제, 필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싸움놀이 등도 전남에 포함돼 있던 것들이다.
릴게임가입머니 종목만 그러한 게 아니다. 안채봉은 나주 남평, 박옥심은 보성, 서창순은 무안 일로, 천대용은 해남, 한애순은 곡성, 김복동은 진도, 감남종은 해남 등 통영 출신 김기복과 남원 출신 정춘실, 광주 북구 출신 박정자를 제외하면 모두 전남 출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남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 광주에서 제도와 이름을 얻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사이다릴게임 된다. 무형문화재만 그러하겠는가? 역사는 물론 문화와 교육과 경제 등 모든 것들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남광주 통합과 관련해 이 지점을 짚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왕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한 갑자가 넘었고 무형유산법으로 바뀐 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이다.
하지만 전주에 국 릴게임갓 립무형유산원을 따로 둬 K-컬처의 토대를 함양하려던 내력이 시나브로 힘을 잃고 있음을 목도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정신문화가 중요하다고 표방하면서 정작 제도나 토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도드라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내력을 성찰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남광주 통합과 의례의 재구성, 문화재에서 무형유산으로기왕의 문화재라는 법령과 제도를 문화유산으로 바꾼 의미가 상당하지만, 행정을 포함한 제반 일들이 문화재 시절의 관성대로 진행되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과 발을 맞춰 재구성할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만 문화쪽 논의의 한 물꼬를 무형유산이 틀 수 있기를 바란다.
1962년 제정되었던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는 보호하고 관리하는 대상이었다. 문화재를 지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여 전수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문화재' 프레임이 갖는 구조적 한계가 너무도 명백했다. 무형문화재가 사람과 공동체 및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지켜야 할 원형으로 환원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보유자는 전승의 주체라기보다 문화재를 대표하고 보관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변화와 재맥락의 시선보다는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평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2003년 유네스코 협약이 생긴다.
보존이 아니라 전승의 생존 가능성을 따져 묻고 공동체, 집단, 전승자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며 변화와 재창조를 전제로 한 유산 개념으로 변화된다. 한국의 무형문화재에게 '살아 있는 전승'을 다루고 있는가라는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고나 할까.
지난 2015년(시행은 2016년) 무형분야를 문화재보호법에서 분리하여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단순한 법 분리가 아니라 개념의 이동이었다. 변하지 않아야 할 기준인 '원형'에서 '반복되며 변주되는 기준'의 '전형'으로 바뀌었다.
무형유산법 제1조는 이렇게 말한다. "무형유산의 보전과 진흥을 통하여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개정 2023. 8. 8)."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진흥, 창조적 계승, 활용이다. 기왕의 문화재보호법의 '현상 유지'라는 논리와는 명확히 다르다.
보유자가 전형 즉, 변화하는 전통을 구현해온 기준점으로 재위치된 것이다. 이것이 국가지정 문화유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시도지정 무형유산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지금 출범하는 통합특별시에서는 국가지정과 대등한 역할분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형유산법 이후 등장한 주요한 정책의 변화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전수교육관, 전승 지원센터, 청년 전승자 지원, 생활 전승, 지역 전승의 활성화, 기록과 아카이브 전승의 지원화 등 기왕의 문화재 관리가 아니라 문화유산 운영 프로그램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지난 칼럼에서 제안하였듯 이제는 통합특별시의 대학들과 연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 문화재보호 프레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관성을 시급히 떨쳐내야 한다.
광주전통문화관 작고문화재명인 추모제·영산재.
남도인문학팁
무형유산의 재구성, 국가와 통합특별시의 역할분담성악의 대표장르 판소리가 전승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출신지는 남도의 어느 마을이고 활동지는 광주 등 도시로 특정된다. 광산농악 담당자들의 계보를 좇아 올라가 보면 이 지점이 더 명백하다. 붓과 나전, 도자와 탱화 등 섬과 산촌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유산이 도시로 나와 활동했고 후학을 길러낸 셈이다.
이제는 무형유산을 전통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시스템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형유산을 흔히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무형유산이 작동해온 방식은 전혀 다르다. 기억을 저장하는 박물관적 시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출신지, 활동지, 전승 계보, 교육 공간 등이 얽혀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더욱 주목할 것이 K-컬처의 토대에 대한 관점이다.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일컫는 것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것처럼, 전남광주특별시 자체를 무형유산의 보고로 재구성할 수 있다. 진도나 광주를 막론하고 주로 남도를 대상으로 예향의 고장이니 본향이니 거론하는 까닭을 살피면 윤곽이 나온다.
기왕의 메커니즘이 국가무형유산제도를 근간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기능과 역할을 나누는 시대로 돌아서고 있다. 서울시와 동등한 자격을 갖는 특별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위계적 구성이나 경쟁보다는 분담이다. 예컨대 국가는 유산 지정과 국제 규범 등을 맡고 특별시는 전승이 실제로 살아남는 구조를 설계한다. 교육, 아카이브, 현장 전승, 시민 참여, 청년 유입 같은 문제를 분담해 설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도지정과 국가지정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혁신을 통해서 실현가능하다. 그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게 광주전통문화관에서 연례행사로 시행해온 통합 추모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행정통합 열차는 출발했으므로 문화쪽 숙의의 과정을 차근차근 이행해나가야겠다. 이 추모제를 사례 삼아 통합특별시 무형유산에 대한 물꼬를 트고 문화 행정, 문화재단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설계와 재구성쪽으로 논의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광주권, 서남해권, 동부권 등의 문화자치와 지역간 균형 등에 대해서도 혁신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국립대학도 유사한 트라이앵글 구조로 재편하거나 통합 및 재구성 등의 논의가 빗발칠 터인데, 문화, 교육 등의 향방을 행정 및 경제, 산업과 발맞춰 논의해나가는 구조를 더불어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광주전통문화관의 무형유산 추모제 광주문화재단 산하 광주전통문화관에서는 해마다 작고한 무형유산 명인들을 기리는 합동추모제를 진행해왔다. 2012년 12위를 중심으로 2025년에는 21위 추모제를 거행하였으니 해마다 제위(祭位)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박희순 전통문화관장 주도로 진행한 의례에 나도 부분적으로 참여하였기에 개인적인 감회를 가지고 있다. 내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전통유교식 제례와 전수자 및 보유자 추모 공연, 헌다례와 제례무 및 제례악, 송순단 무녀 초청 씻김굿, 영산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재와 판소리 공연 및 광산 농악 초청 공연, 능주 씻김굿 초청 공연, 광주전통불교영산재보존회 초청 영산재 진행 등으로 나타난다.
해마다 컨셉을 달리하긴 했지만, 광주시 지정 무형유산 보유자들을 추모하는 의례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살피고 싶은 것은 2026년 1월 현재 21위에 봉헌된 보유자들의 출생과 활동 내력에 알라딘게임 관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1986년 11월 1일 광주광역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무형유산 보유자 소속이 모두 전라남도였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남도판소리가 197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였고, 판소리 강산제, 필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싸움놀이 등도 전남에 포함돼 있던 것들이다.
릴게임가입머니 종목만 그러한 게 아니다. 안채봉은 나주 남평, 박옥심은 보성, 서창순은 무안 일로, 천대용은 해남, 한애순은 곡성, 김복동은 진도, 감남종은 해남 등 통영 출신 김기복과 남원 출신 정춘실, 광주 북구 출신 박정자를 제외하면 모두 전남 출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남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 광주에서 제도와 이름을 얻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사이다릴게임 된다. 무형문화재만 그러하겠는가? 역사는 물론 문화와 교육과 경제 등 모든 것들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남광주 통합과 관련해 이 지점을 짚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왕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한 갑자가 넘었고 무형유산법으로 바뀐 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이다.
하지만 전주에 국 릴게임갓 립무형유산원을 따로 둬 K-컬처의 토대를 함양하려던 내력이 시나브로 힘을 잃고 있음을 목도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정신문화가 중요하다고 표방하면서 정작 제도나 토대의 역할에 대해서는 도드라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내력을 성찰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남광주 통합과 의례의 재구성, 문화재에서 무형유산으로기왕의 문화재라는 법령과 제도를 문화유산으로 바꾼 의미가 상당하지만, 행정을 포함한 제반 일들이 문화재 시절의 관성대로 진행되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과 발을 맞춰 재구성할 게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만 문화쪽 논의의 한 물꼬를 무형유산이 틀 수 있기를 바란다.
1962년 제정되었던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는 보호하고 관리하는 대상이었다. 문화재를 지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여 전수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문화재' 프레임이 갖는 구조적 한계가 너무도 명백했다. 무형문화재가 사람과 공동체 및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지켜야 할 원형으로 환원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보유자는 전승의 주체라기보다 문화재를 대표하고 보관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변화와 재맥락의 시선보다는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평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2003년 유네스코 협약이 생긴다.
보존이 아니라 전승의 생존 가능성을 따져 묻고 공동체, 집단, 전승자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며 변화와 재창조를 전제로 한 유산 개념으로 변화된다. 한국의 무형문화재에게 '살아 있는 전승'을 다루고 있는가라는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고나 할까.
지난 2015년(시행은 2016년) 무형분야를 문화재보호법에서 분리하여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단순한 법 분리가 아니라 개념의 이동이었다. 변하지 않아야 할 기준인 '원형'에서 '반복되며 변주되는 기준'의 '전형'으로 바뀌었다.
무형유산법 제1조는 이렇게 말한다. "무형유산의 보전과 진흥을 통하여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개정 2023. 8. 8)."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진흥, 창조적 계승, 활용이다. 기왕의 문화재보호법의 '현상 유지'라는 논리와는 명확히 다르다.
보유자가 전형 즉, 변화하는 전통을 구현해온 기준점으로 재위치된 것이다. 이것이 국가지정 문화유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시도지정 무형유산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지금 출범하는 통합특별시에서는 국가지정과 대등한 역할분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형유산법 이후 등장한 주요한 정책의 변화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전수교육관, 전승 지원센터, 청년 전승자 지원, 생활 전승, 지역 전승의 활성화, 기록과 아카이브 전승의 지원화 등 기왕의 문화재 관리가 아니라 문화유산 운영 프로그램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지난 칼럼에서 제안하였듯 이제는 통합특별시의 대학들과 연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 문화재보호 프레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관성을 시급히 떨쳐내야 한다.
광주전통문화관 작고문화재명인 추모제·영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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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의 재구성, 국가와 통합특별시의 역할분담성악의 대표장르 판소리가 전승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출신지는 남도의 어느 마을이고 활동지는 광주 등 도시로 특정된다. 광산농악 담당자들의 계보를 좇아 올라가 보면 이 지점이 더 명백하다. 붓과 나전, 도자와 탱화 등 섬과 산촌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유산이 도시로 나와 활동했고 후학을 길러낸 셈이다.
이제는 무형유산을 전통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시스템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형유산을 흔히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무형유산이 작동해온 방식은 전혀 다르다. 기억을 저장하는 박물관적 시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출신지, 활동지, 전승 계보, 교육 공간 등이 얽혀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더욱 주목할 것이 K-컬처의 토대에 대한 관점이다.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일컫는 것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것처럼, 전남광주특별시 자체를 무형유산의 보고로 재구성할 수 있다. 진도나 광주를 막론하고 주로 남도를 대상으로 예향의 고장이니 본향이니 거론하는 까닭을 살피면 윤곽이 나온다.
기왕의 메커니즘이 국가무형유산제도를 근간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기능과 역할을 나누는 시대로 돌아서고 있다. 서울시와 동등한 자격을 갖는 특별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위계적 구성이나 경쟁보다는 분담이다. 예컨대 국가는 유산 지정과 국제 규범 등을 맡고 특별시는 전승이 실제로 살아남는 구조를 설계한다. 교육, 아카이브, 현장 전승, 시민 참여, 청년 유입 같은 문제를 분담해 설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도지정과 국가지정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혁신을 통해서 실현가능하다. 그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게 광주전통문화관에서 연례행사로 시행해온 통합 추모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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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광주권, 서남해권, 동부권 등의 문화자치와 지역간 균형 등에 대해서도 혁신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국립대학도 유사한 트라이앵글 구조로 재편하거나 통합 및 재구성 등의 논의가 빗발칠 터인데, 문화, 교육 등의 향방을 행정 및 경제, 산업과 발맞춰 논의해나가는 구조를 더불어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